2017년 3월 29일 수요일

나츠메 소세키 『마음』


책을 읽기 전에 쓰고 난 자소서를 다 쓰고 난 뒤에 읽어보았다.
이 자소서에 있는 ‘나‘ 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인가
아니면 지원처에서 원하는 인간상을 적당히 꾸며쓰고
영악한 재주와 말로 꾸민 허상인가.

『마음』은 3부작 구성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 가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만나계 된 계기와 인연을 쌓아가는 1부
친척들과 집안 문제로 고민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2부
그리고 선생님의 편지로 드러라는 선생님이란 인물의 과거와 내면을 그린 3부
이렇게 3부작 구성을 통해 나츠메 소세키는 ‘나‘ 라는 자아가 남과
어떤 모습에서 차이를 보여주는가. 어떻게 관계를 쌓아올리고
마음 속에 어떤 상처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어둠이 어떻게 사람을 집어삼키는가 를
사람과의 접근을 관계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선생님의 행동을 통해
독자가 호기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3부에서 드러난 선생님 이란 인물의 진실은 서투르고
약아빠지지 못한,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킨다 는 사실에 
납득하지 못한 애처롭고 순수한 젊은이였다. 자신의 내면에
남과 비슷한 욕망이 있고 남을 짓밟고서라도 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아온 내내 경계해 온 선생님의
삶의 태도는 꼬장꼬장하다고 비난할 수 없을만큼 애처로웠다.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가면 무도회 1, 2 - 요코미조 세이시




줄거리 소개

네 번 결혼, 네 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유명한 여배우 지요코. 그녀의 다섯 번째 연인인 다다히로는 재계의 거물이자 공작가의 후손이다. 다다히로는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지요코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남편의 1주기가 그가 숨진 휴양지에서 마련되고,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 마침 근처에 있던 지요코의 세 번째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된다. 그리고 네 번째 남편마저 모습을 감추고 마는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장편.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 인생의 후반부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제 나이보다 더 많은 작품이네요. 처음 잡았을 때는
700페이지를 넘는 상/하권 구성의 두께와 맨 처음부터 떡하니 자리잡은
두 페이지에 걸친 인물소개도를 보고 이거 읽을 수는 있나 싶었는데
처음에 조금 버거웠지만 술술 읽혔습니다. 사건의 등장인물들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보는 사람이 지겨워하지않게 배려해준 요코미조 선생님의 서술방식이 지루함을
덜어줬기 때문이죠. 덕분에 좋은 작가가 되려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버려야한다 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다음에는 또 누가 어떤 꼴을 당하나 하는
기대심리와 비슷한 효과였지요. 그러면서도 사건의 중심 - ‘후에노코지와 관계를 가진 여성‘
에 대한 궁금증이 이 소설이 그냥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추리 소설의 이미지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도대체 그 여성이 누구냐 등장인물들 중에서 누가 후에노코지 야스히사와 관계를 가졌나
궁금해하면서 다음 페이지 다음 페이지 하며 넘겼는데 그 정체가 에필로그에 드러났을 때
준 충격이란 정말 소름 돋았을 정도에요. 하지만 반대로 본다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가지고 있는
구귀족 세대 당시 기준으로 ‘화족세대‘ 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드러나 보는 입장에서 불편했다 하나
너무 우려먹어서 맛이 없는 설렁탕 국물같은 느낌이더군요.

거기에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막장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여자명배우를 둘러싼 2차대전 전 군림하던 화족세대와 전후세대 사람들 간의 치정극이죠.
자연히 사건의 해결을 담당한 탐정인 긴다이치의 역할이 줄어듭니다.
성냥개비를 이용한 퍼즐이란 고전 추리물의 장치까지 동원했는데
전개는 ~이러이러한 ~ 우연으로 ~ 진행했더니 ~ 짜잔 ! 사람이 죽었다 헉! 식이라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아니라 따로 분리해도 될 정도에요.
거기에 진범의 등장도 에필로그 바로 전에 있더라 식으로 언급했다가
마지막에 에필로그에 등장시켜서 독자들이 소름이 돋게 하지만
추리소설에서 그런 식으로 진범을 따로 두면 퍼즐 맞추듯 사건 추리하는 재미로
추리소설 읽는 독자들은 실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는 별5개 줄 생각이었지만 별 1개를 빼서 별 4개짜리 소설이네요.

2017년 2월 24일 금요일

스티븐킹 - 리바이벌 (Revival)



스티븐 킹의 <리바이벌> 을 다 읽었다. 
그리고 잠시 책을 덮은 뒤 책장에 놓여있는 
스티븐 킹의 시리즈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의 소설들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코드는 있다.
마약/알콜중독, 항상 배경이 되는 공간은 메인 주.
어떤 면에서든 문제가 있는 주인공. 무자비한 현실.
다정하지 않은 사회. 하지만 이런 요소들 중에서
내가 가장 스티븐 킹이 잘 다루는 소재를 꼽으라면
'상실의 아픔' 이다. 킹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행동력을 발휘하는 동기는 대부분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다. 가족이든 개인의 소지품이든 소중한 추억이든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킹의 손을 거치면서
우리들 독자들을 책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물론 몇몇은 진부해서 그 플롯이 독창적이지 않고
단순한 자기복제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어떨 때는 전개가 예측되기도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킹의 소설 신간이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된다 왜 그럴까

그건 스티븐 킹이 자기의 캐릭터를 '살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의 왕이라 불리지만 킹의 소설 속 공포는
초자연적인 공포가 아니다. 초자연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 소재가 오롯이 공포를 전부 담당하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소재는 말 그대로 소재로 끝나고
그 소재에 접근하는 '인간' 이 가지는 감정을
최대한 묘사해 '공포' 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렇기에 킹의 소설은 그만큼 인간적이면서
한 편으로 마치 내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생생해진다.

그래도 일단 서평이니 <리바이벌>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제이미 모턴이란 꼬마가 찰스 제이컵스란 목사를 만나고
50년이란 시간 동안 둘이서 작중 표현으로
당구치듯이 서로 마주치고 때로는 떨어지면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어릴 적의 제이미를 만난
찰스 제이컵스 목사는 유년기의 제이미가 기억하기론
정말로 기적을 행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제이컵스 목사는 설교 시간에
신성모독적인 설교를 하고 교회와 제이미를 떠난다.
그리고 기타리스트로 진로를 잡았던 제이미는
약물중독으로 폐인이 된 시점에서 전기쇼를 하는 마술사로
전업한 제이컵스를 만나 그의 전기치료로 약물중독을 벗어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제이컵스의 전기치료에서
어떤 광기를 발견한 제이미는 그에게서 치료받았던 이들을
조사하다가 그들 중에서 부작용으로 미치거나 폐인이 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제이컵스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제이컵스의 마지막 실험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도와주게 되버린 제이미는 제이컵스가 행한
최후의 실험의 와중에 어떤 위대한 것(Great One) 을 보게되고,
실험은 성공했지만, 제이컵스 목사는 죽고, 제이미는 미쳐버렸다.

한국판으로 6권짜리인 장편 그것(It) 에서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스티븐 킹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
이번 <리바이벌>. 내용만 본다면 20대의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이 광기 넘치는 소설을 이제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가 썼다
믿겨지는가 ? 하지만 믿자. 일단 대필은 절대로 안 할 영감님이니까

2017년 2월 15일 수요일

킨 - 옥타비아 버틀러



대부분의 SF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백인이었다. 그렇다면 흑인여성이 SF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 1970년대를 살던 흑인여성이 아프리카나 남미가 아닌,
노예제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19세기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 그녀는 어떻게 처신할까

옥타비아 버틀러의 SF 소설 킨은 이런 가정에서 출발한다. 1970년대를 살던 케빈은 돌연
1815년을 살던 루퍼스의 부름으로 과거로 오게 된다. 1970년의 시간이 몇 초 흐를 동안
1810년대의 시간은 몇십분씩 흐르는 시간의 불일치 속에서 케빈은 많은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목숨의 위기에 처한 루퍼스를 살리거나,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행동하거나
흑인을 검둥이로 칭하는 노예주를 고쳐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루퍼스와 케빈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하지만, 동일한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은 결국 둘 중에 한 쪽이 죽어야만 이 기묘한 시간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 소설 '킨' 은 SF 를 소재로 사용했지만. SF 소설보단 흑인노예제를 고발하는 소설에 가깝다.
1800년대 미국, 노예제가 당연했던 시기의 흑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아픔을 1900년대의
사람의 시야에서 보여주는 소설이다.